
지나간 청춘
W. 윤슬
"죄송합니다. 불합격입니다."
"죄송하지만, 불합격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통화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불합격'.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는지, 면역력이 생긴 건지 처음 면접 때의 결과를 받은 것처럼 상심이 크지는 않았다.
"하, 이제는 뭐 먹고 사냐…."
무엇보다 지금 살고 있는 방도 한 달 치 월세가 밀려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무리 알바를 여러 개 뛰고 있다고 해도 생활비까지 합치면 사는 데 부족하기는 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2년이나 흘렀는데 지금까지 직장을 얻지 못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 직장을 얻기 힘들다는 시세인 것을 알지만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마음의 타격이 컸다. 알바 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주인아주머니의 월세 언제 내냐는 소리, 이제는 듣기도 지겹다. 초등학생 때 아파트 한 채를 사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큰 소리로 뻥뻥 치고 다녔는데 그 때의 나는 어디가고 이렇게 남았을까,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따라 많이 오간다.
이제 지원한 회사가 두 군데 남았다. 내일쯤에야 합격 불합격 통보를 받겠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민은 불안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그 일'이 있고난 이후에 생긴 버릇인 것 같다. 이 버릇이 나올 때마다 그 사람의 차가운 눈빛이 떠올라 인상을 찌푸리는 지민이었지만, 버릇이라는 게 마음대로 고쳐지지 않는지라 항상 이런 생활을 반복할 뿐이었다.
'쨍그랑-'
"아, 오늘따라 왜 이러지."
오늘따라 운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운동도 안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이상하리만큼 찌뿌둥하질 않나, 쓰던 노트북이 고장 나지를 않나, 설거지 하다가 접시가 깨지기까지. 하필 이력서를 넣었던 마지막 두 회사에서 결과가 나오는 날 이러니 더 불안하다. 이번에도 불합격 통보릍 받으면 어쩌나 싶어서 얼른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우는 지민이었다.
오후 2시. 2시부터 면접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두근거리고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불합격 되셨습니다."
역시나,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음성소리. 일단 한 군데는 떨어졌다. 절망할 틈도 없이 지민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박지민 씨. 축하드립니다, 합격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겪어서 입을 벌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분 동안 그러고 있다가 뱉은 첫 마디. '헐' 이 소리 외에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운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이렇게 합격 통보를 받을 줄이야. 예전에 합격됐던 회사에서 사기를 쳐 돈도 못 받고 잘린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사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약간 해 보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싱긋- 웃었다.
"여보세요? 지민이 형?"
"정국아. 오늘 밤에 술 마시자, 형이 쏜다!"
정국은 최근에 이렇게 기분 좋은 지민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술을 사준다니, 완전 계탄 거 아니냐 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지민의 술 제안을 수락했다.
"어, 정국아. 여기!"
"형, 웬 일이에요? 좋은 일 있어요?"
그 날 저녁, 지민은 정국을 동네 앞 술집으로 불렀다. '딸랑-' 소리를 내며 정국이 가게에 들어오자, 지민은 테이블에 앉아 손을 흔들며 정국을 불렀다.
"형이 취업 성공했지 않냐."
"어, 진짜요?! 어디예요?!"
"△△기업. 여기는 솔직히 될 줄 모르고 그냥 넣었는데 다른 곳 다 떨어지고 여기가 붙었더라고."
"거기 좀 좋은데 아니에요? 오- 지민이 형 출세하는 거야?!"
"아잌, 출세는 무슨!"
정국과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술잔은 점점 채워지고, 비워짐을 반복했다. 하루의 스타트는 나빴어도 하루의 마무리는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삐리리리-'
"아웅- 쫌만 더 잘래.."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소리. 요즘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생활이 반복돼서 그런지 오랜만에 듣는 알람소리가 귀에 익숙지가 않다. 조금만 더 자자, 하며 자신을 되뇌이고 있던 지민이 순간 첫 출근 생각에 감았던 눈이 번쩍 뜨였다. 지민의 눈이 떠짐과 동시에 상체를 일으켰다.
"아씨, 오늘 출근.."
참 출근이라는 단어는 학교 다닐 때의 등교라는 단어처럼 정이 가지를 않는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밍기적 밍기적 거리며 억지로 끌고 갔다. 현재 시각 6시 30분. 8시 까지 오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의 시간은 남아있다. 마음 같으면 다시 침대로 뛰어들고 싶지만 왠지 지금 자면 못 일어 날 것을 알기에 잠은 포기했다. 지민은 대충 차린 밥을 푹푹 퍼먹고 말끔하게 씻은 뒤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꺼냈다.
"뭐 더 챙길 건 없나?"
잠시나마 곰곰이 생각하던 지민은 시간을 확인한 뒤, 핸드폰을 챙겨 빠르게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는 7정거장을 지나자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되는 마음 반을 안고 지민은 이제 자신이 다닐 △△기업에 발을 들였다. 지민이 안내 받은 층으로 가자 보이는 사람들. 시간을 보니 다행히 늦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지민의 우렁찬 한 소리에 같은 공간 안에 있던 여러 개의 눈이 모두 지민을 향했다.
"오, 자네가 오늘 첫 출근이라는 그 인턴인가? 이름이 박지민이라고?"
"네, 박지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 회사 사람들 앞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지민은 상사에게 자리를 배정 받았다. 지민은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던 도중,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옴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이고, 태형 씨. 오늘도 딱 맞춰서 왔구만. 인사해. 우리 팀 신입 박지민 인턴."
역시나. 왜 좋지 않은 예감은 피하지를 못하는가.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했던, 그 얼굴이 지민의 눈과 마주했다. 지민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입을 열게 되면 무슨 말이 튀어 나올 줄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멍 하게 가만히 있었다. 이런 지민을 본 지민의 상사가 인사 안하고 뭐하냐는 눈빛으로 지민을 더욱 보챘다.
"아,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그제야 놓았던 정신 줄을 겨우 잡은 지민이 태형을 향해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아, 지민 씨? 반가워요,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태형은 지민과 상반되게 반대로 무덤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태형은 그저 지민을 처음 본 사람처럼 싱긋- 웃으며 지민의 악수를 받았다. 지민은 그런 태형을 보고 나서 갑자기 밀려오는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태형의 얼굴만 마주치면 분노로 가득 차는 나날을 보냈는데 어째 저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오히려 그게 더 얄미웠다.
"지민 씨, 이거 복사 좀 해줘."
"지민 씨! 나 커피 좀!"
"지민 씨, 이거 좀 옮겨줄래요?"
"박인턴, 여기 이것 좀 대신 써 줘."
"지민 씨!"
"지민 씨!"
여기저기서 불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지민은 정신없이 불려다니느라 태형의 생각은 집어 치운 지 오래다. 아니, 너무 정신이 없어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는 말들이 회사원이지, 그저 심부름꾼 취급 같다. 지민은 또 일거리를 잔뜩 들고 와 복사기 앞에 서서 복사기를 만지고 있었을 때였다.
"어라, 이거 왜 작동이 안 되지…."
"작동 안 돼요? 코드 안 꼽은 거 아닌가."
"아, 맞네. 감사합니…헉!"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민이 뒤를 돌자, 태형이 눈앞에 서서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은 너무 놀라 하려던 말도 까먹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지민 씨, 열심이네? 수고해-"
태형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민에게 짧은 한 마디를 건네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태형이 발걸음을 돌리자 지민의 길게 나오는 한 숨. 아무래도 이번 회사 생활은 망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자, 오늘은 신입도 왔으니 회식-!"
지민은 회사에서 하는 이런 회식 같은 자리가 너무 싫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도 아니고, 술을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입이라 술이 따라지면 거절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들이켰다. 분명 술을 못한다고 말은 했지만 서도 그런 거에 관여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완전 만취한 상태로 귀가를 하게 되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할 수는 있을까, 지민에게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와, 이 년 질질 싸는 것 좀 봐.'
'야, 치사하게 너만 하냐?'
'뭐야, 뭘 잘했다고 울어?'
하- 또 이 꿈이다. 입사하고 한 달 동안 거의 일주일에 3번꼴로 이 꿈을 꾼다. 지민이 고등학생 때 시절, 같은 반 남학생 3명에게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눈빛들, 그 행동들, 8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민이 아무리 살려달라고, 그만하라고 외쳐도 그저 보고만 있었던 반 아이들. 그 중에 태형이 있었다. 그 이후에 지민이 전학을 가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태형을 보고 난 이후로부터 다시 안 좋은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되었다. 입사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지민이 태형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다녀서 그런지 의외로 많이 부닥치는 일은 없었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일주일에 적어도 3번씩 회식을 하는 것. 술도 못하는 지민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신입이라 빠질 수도 없는 노릇.
"오늘은 내가 쏜다!"
부장님의 쾌활한 웃음소리. 또다. 어제 마신 술도 올라 올 것 같은 느낌인데 또 술이라니. 아프다고 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신입이라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자, 지민 씨. 한 잔 받게나."
"아, 감사합니다!"
마음에도 있지 않은 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처음 회식자리 보다는 요령이 생겨 전처럼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참 이 회사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이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지민은 아무리 요령이 조금 생겨도 그렇게 많이 피하지는 못했는지 쉽게 취해버렸다. 볼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지민은 잠시 가게를 나섰다.
"하-"
12월이라 그런지 약간씩 나오는 하얀 기체.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추운 건 딱 질색이랄까. 예전부터 추운 게 제일 싫었다.
"지민 씨, 안 추워요?"
그때 들려오는 낮은 음성.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민에게 무심한 듯 툭 던져주는 태형의 코트. 기분 나쁜 태형의 냄새가 지민의 코끝을 건드렸다.
"…괜찮아요."
"거짓말. 추운 거 싫어하잖아요."
왜 저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걸까. 그때나 이렇게 잘해주지. 그랬으면 이렇게 악몽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자신이 추운 거 싫어하는지는 또 어떻게 안 건지. 하긴, 고등학교 때 추워서 창가 쪽 자리에 앉기 싫어하는 지민이었다. 설마 그때를 기억하겠어. 나에겐 잊지 못할 끔찍한 추억이지만 너에겐 금방 잊혀지는 추억이잖아.
"지민 씨, 나 편의점 가는데 같이 갈래요?"
"네? 제가 왜…."
"혼자 가는 건 심심하잖아요, 같이 가요."
어처구니없는 이유. 태형이 직장 상사라면 직장 상사라서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기에는 힘들었다. 나는 언제쯤 이 회사에서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일은 안 생길 것 같았다. 어쩌겠어, 이게 내 처진데.
"가요."
"어?"
"편의점, 간다면서요.“
지민은 한숨을 쉬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여기 와서 한숨이 늘어난 느낌은 기분 탓일까. 지민은 태형의 코트를 챙겨 길을 나섰다.
"웬 박하사탕이에요?"
"아아, 박하사탕 먹으면 술이 좀 깬다고 하네요. 지민 씨도 드실래요?"
"아, 아뇨. 괜찮아요…."
둘은 그렇게 말없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지민은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고 태형은 어느 정도 술이 깬 상태였다.
"지민 씨."
태형이 낮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지민을 불렀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태형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왜ㅇ…읍!"
자신 쪽으로 돌아보는 지민의 양 볼을 잡고 태형은 지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지민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약간 벌렸고, 태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민의 입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지민의 입 안에 퍼지는 싸한 박하 향. 어느 순간인지 지민의 입 안속에는 태형이 먹고 있었던 박하사탕이 들어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좋아해."
"…거짓말."
"그리고… 미안해."
태형은 이 두 마디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은 갑작스런 태형의 입맞춤과 고백에 술이 확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이제 와서 자신이 왜 좋다는 건지,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그 때의 일? 지금 이 키스한 일? 태형의 속은 알래야 알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지민은 태형의 생각에 밤을 지새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형이 자신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일이 주말인 것 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이후에 태형의 얼굴을 마주 본다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내일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지민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주말이 끝나가고 다시 출근시간이 되돌아온다는 것은 상상도하기 싫었다.
지민의 바람과는 반대로 주말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출근 준비를 하는 지민의 얼굴에는 피곤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출근 길,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지민의 마인드 차이랄까. 주말 내내 태형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거의 자지 못한 지민이었다.
“지민 씨,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청 피곤해 보여.”
“하하, 그러게요….”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어져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 옥상으로 가는 지민이었다. 옥상에 오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 지민은 옥상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보니 옥상을 꽤 많이 들락날락 거렸다.
‘끼익-’
기름칠이 되지 않아 이상한 소리가 나는 옥상 문이 열렸다. 이곳은 웬만해서는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니라 지민은 누군가 싶어서 뒤를 돌아 옥상으로 들어오는 그 사람을 주시했다.
‘헉,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아….”
이때까지 잘 피해 다니던 지민의 성과가 허무해 지는 순간이었다. 눈앞에는 그토록 보고 싶지 않았던 태형이 있었고, 지민은 너무 놀란 나머지 태형을 지나쳐 옥상을 나갈려 했다,
‘탁-’
“지민 씨,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저…저는 할 얘기가 없…”
“지민아.”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태형의 낮은 음성. 왜인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묻어 있었던 것은 기분 탓일까.
“얘기 좀…”
“뭔데.”
“…미안해.”
“그 소리라면 전에도 했잖아.”
“예전부터, 좋아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
“너는 진짜 이기적이구나.”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전하는 태형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나는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해 8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그 악몽을 꾸곤 하는데 너는 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건데. 지민은 태형의 손을 뿌리치고 옥상에서 내려가려 했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태형의 목소리만 아니었어도.
“지금 너에게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너는 이미 그 새끼들한테 당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당하고 있는 것을 본 내 생각은 해 봤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때 이후로 너는 악몽에 시달렸듯이 나도 그랬어. 너를 다시 만난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을 못 잔다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이 바뀐대.’ ‘그러면 과거의 추억이 바뀔 수도 있는 거야?’ ‘음, 그럴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어렸을 때, 지민의 형이 지민에게 해준 말이 지민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리고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던 그 기억이 떠올랐고, 예전과 다르게 그 끝에는 태형이 있었다. 태형과 지민은 그 때 당시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연인이었고, 그 에 태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지민을 강간하게 된 것이다. 지민은 급히 전학을 가게 되었고 전학을 가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종종 수업시간에 발작을 일으켰다. 결국 지민은 정신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겨우겨우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민은 자연스럽게 태형을 잊어버렸다. 홀로 남은 태형은 매일 지민의 생각에 눈물을 흘렸고, 지민이 어디 학교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은 잊지 못할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다.
“너, 너……!”
태형이 지민에게 다가갔고 둘의 입술은 포개졌다. 처음에 한 키스처럼 거친 키스가 아닌 태형이 지민을 배려해준다는 듯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키스였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왜…왜 이제야 와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미안해, 지민아…미안해….”
“왜 이제야 나타난 건데…….”
지민은 태형의 와이셔츠를 붙잡고 태형의 품속에서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태형은 그런 지민을 꼭 안아주며 토닥여 주었고 태형의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에 더욱 더 태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지민아, 미안해. 이제 어디에도 안가고 네 옆에 남아 있을게.”
태형의 한 마디를 끝으로 둘의 입술은 다시 포개졌다. 지민의 눈물 때문에 짭짤한 맛이 느껴졌지만 지민의 입 속 커피 향이 태형에게 전해져 달콤한 향이 퍼졌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봄에 꽃이 피듯이 다시 시작되었고 동시에 우리의 청춘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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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집 사람
[301호 그 남자]
Written by 윤 슬
'우당탕, 쾅!'
"아 누구야! 어제부터 존나 시끄러워."
어제 새벽, 막 원고를 끝내서 담당자에게 보낸 태형이 잘려고 누웠을 때 였다. 뭐가 그렇게 난잡한지 옆집에서 계속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비명을 지르는 소리 등 온갖 난잡한 소리가 난무했다. 이런 환경속에 결국 원고를 끝내고도 한 숨도 자지못한 태형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결판을 내야 할 것 같아서 태형은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이 살고 있는 302호 옆집인 301호로 향했다.
'띵동- 띵동- 쾅쾅'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말 그대로 태형의 목소리에서는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원고 때문에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하고 일어났으니 불쾌 지수가 최고점을 찍을 수 밖에. 그 때 안에서 온갖 난잡한 소리가 나면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드디어 벌컥 열렸다.
'우당탕- 벌컥'
"어, 누구시죠?"
문이 열리고 얼굴을 내민 남자는 청소를 하는 것 같은 복장이었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땀을 흘리며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태형을 올려다 보았다. 보는 그대로, 참 보기 드문 순진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래서 그런건지 태형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고 말 문이 턱 막혔다.
"아, 아니. 저기.."
"혹시 밤새 시끄러우셨나요? 죄송해요, 제가 며칠 전에 이사를 와서 정리를 좀 한다고.."
아무래도 그 남자는 태형의 몰골을 보고 그런 소리를 했나보다. 딱 봐도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은 얼굴, 머리에는 방금 누워있다왔는지 까치집이 지어 있었으니 못 알아 보는게 이상한 것일지도.
"아, 아니에요. 며칠 전에 이사 오셨다면 그럴 수도 있죠!"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아, 저는 302호 살고 있는 김태형 이라고 해요."
"저는 301호 살고있는 박지민 이에요."
자신을 '박지민' 이라고 칭하는 이 남자는 태형에게 사람좋은 미소를 보이며 헤헤 웃어보였다 . 요즘 세상에 자기 나이때에 이렇게 순진무구한 사람은 태형에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지민을 만나고 난 일주일 뒤, 비가오는 날에 태형은 원고를 미리 작성하고 있을 때 였다.
'우르릉 쾅!'
"아아아악! 안돼!!"
그 때, 천둥소리가 요란차게 나면서 지민과 태형이 살고있는 동네에 전봇대가 번개를 맞으며 온 동네에 정전이 되었다. 컴퓨터로 원고를 작성하고 있던 태형은 절망 그 자체. 그 때,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태형의 집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태형씨? 왜그래요?! 괜찮아요?!"
아무래도 옆 집에서 그렇게 비명을 지르니 걱정되서 뛰쳐 나왔나보다. 그렇다고 멀쩡히 있는 초인종을 누르지않고 문을 두드린 것을 보니 많이 걱정됐나 싶었다. 태형은 절망적인 표정을 가지고 현관 문을 여니, 맨 발인 체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지민이 눈 앞에 서있었다. 집안에서 누워있다가 뛰쳐나왔는지 뒷 머리는 뭉게져 있었고 그 짧은 거리를 뛰었는데도 이마에는 땀이 약간 송글 맺혀있었다. 그러면서 숨을 거칠게 내쉬는데 사람이 이렇게 섹시해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태형이었다. 태형은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뛰어 온 지민을 보며 고마움과 감정이 북받쳐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지민씨.. 으허헝.."
"왜, 왜그래요 태형씨?!"
"원고가..원고가 날아갔어요...."
태형은 이 한 마디를 끝으로 아기가 엄마를 찾듯이 지민의 품에 안겼다. 그런 태형이 걱정되어 그런 태형을 마치 제 자식처럼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자 태형은 지민의 품에 더 깊숙히 파고들었다. 그 때, 태형은 무언가가 생각났듯이 지민의 어깨를 붙잡고 지민의 품에서 벗어나 눈을 마주쳤다.
"지민씨, 우리 요 앞에서 술 한 잔 할래요?"
"네? 아, 저 술 못하는데.."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 혼자 먹으러 갈 수밖에, 원고 날아가서 우울한데, 태형은 지민이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민은 그런 태형이 짠하기도 하고 거절한 것이 너무 심했나 싶어서 결국 뒤돌아 있는 태형을 불러 태형의 제안을 허락했다.
"아, 알았어요. 그래요! 술 먹으러 갑시다!"
"정말요?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에요!"
지민의 대답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말을 잇는 태형이었다. 그런 태형을 보며 지민은 아, 걸려들었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태형의 웃음이 어딘가가 힘이 없어보여 더 이상 거절을 하지 못했다. 태형은 자기가 맛있는 곳을 안다며 지민을 비싼 집으로 이끌었지만 지민은 너무 비싼데 아니냐며 괜찮다고 자기가 쏘겠다는 태형을 이끌고 집 앞에 있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사실 이 포장마차는 태형이 평소에 자주 오는 곳이었다. 지민은 여기가 태형이 자주 오는 곳인지 알 턱이 없었고 태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씨익 웃었다. 이런걸 바로 운명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우연이라고 할지. 태형이 먼저 들어서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태형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냈다.
"아이구, 작가양반 오랜만이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자연스럽게 들어서 인사를 주고받는 태형과 아주머니를 보고 지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태형에게 여기 자주 오냐고 물었다. 태형은 가끔씩 술이 땡길 때 온다고, 그런데 이 동네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혼자 온다고 대답하였다.
"이제 같이 올 술 친구가 생긴 것 같네요."
태형은 이 한마디를 끝으로 지민을 보며 입에 미소를 머금었고, 태형과 눈이 마주치자 아직 술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얼굴이 벌게진 지민이었다. 지민이 다시는 술 안 마실 거라고 태형에게 외쳤지만 태형은 마치 유치원생이 이제 아빠랑 목욕 안하고 혼자 할 거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 흐뭇하게 쳐다 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근데 태형씨, 태형씨 작가예요?"
"응, 저 그냥 틈틈히 책 쓰는 사람이에요."
"오오 무슨 책 내셨어요?"
"음, 대표적인게 '3년전 그 곳에서' 인데 혹시 알아요?"
"헐 저 그 소설 책 완전 좋아하는데..!"
지민은 태형의 말을 듣자마자 말이 반응도 하기 전에 손이 빨랐다. 바로 자기도 모르게 책상을 쿵 친 지민이었다. 지민의 반응을 보자마자 태형은 깜짝 놀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제 주위에 이 책 읽으신 분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태형은 턱을 괴며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민은 아직도 넋이 나간 상태. 하긴, 평소에 좋아하던 책의 작가가 자기 눈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제정신일 리가. 그런 지민을 바라보던 태형이 지민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지민씨? 괜찮아요?"
"그 태형이 그 태형이었구나.."
태형이 지민에게 말을 걸어도 지민은 알 수 없는 말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지민의 표정이 뚱 해 지며 태형에게 왜 말을 안했냐고 앙탈부렸다. 태형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안 물어 봤으니까 말 안했죠, 지민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지민씨 진짜 술 안마셔요? 나 오늘 같은 우울한 날 술 친구 필요한데.."
"저 진짜 술 못하는데.."
결국 지민은 태형의 한 마디에 항복한다는 듯이 태형이 따라준 술을 받았다. 크으- 쓴 소리를 낸 지민이 다 마셨다는 것을 확인해 주듯 빈 잔을 머리 위에 털었다. 그것을 본 태형은 큰 소리를 내며 지민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게 뭐에요~!"
"왜, 다들 이러지 않아요? 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그러던데.."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웅얼거리는 지민을 보고 태형은 그런 지민이 귀여운지 빵 터졌다. 아 웃지마요-! 태형을 향한 지민의 외침에 태형은 알았다며 요즘에 다들 그런다고 지민을 우쭈쭈 해주었다.
그렇게 지민은 원고가 날라간 태형을 위로해 준다치고 계속 태형의 술을 거절 하지 않고 쭉 마셨다. 태형의 의도인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지민이 취했다.
"헤헤헤 태형씨이-"
"응, 나 여기있어요."
주사가 애교인지 헤헤 웃으며 태형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지민이었고, 태형은 그런 지민이 흥미로운지 턱을 괴고 지민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지민은 갑자기 표정이 뚱 해지며 태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에라이 씨, 분명 나랑 같은 밥 먹고 같은 물 마셨는데 드릅게 잘생겼네."
"네? 뭐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작가님 이미지가 아니에요오- 더 잘생겼어, 젠장."
꿈뻑 거리며 지민의 말을 듣던 태형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웃었다. 진짜 너무 귀엽다. 완전 내 스타일 같아.
"지민씨, 지민씨도 잘생겼어요."
"아니에요.. 정말요..?"
"네, 정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귀여운 걸요."
태형은 남자도 반할만한 미소를 지민에게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민은 자신을 보며 웃는 태형을 보자 고개를 푹 숙이며 귀가 벌게졌다. 머쓱한 지민이 다시 술 잔을 잡자, 태형은 지민을 저지했다.
"지민씨 술 못한다면서요, 왜 이렇게 많이 마셔요."
"아아 손 놓으세요오- 잘생긴 사람 말은 안들을거야!"
앙탈 부리는 지민을 뒤로 하고 지민의 술 잔을 빼앗아 태형은 한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지민이 처음에 했던 것 처럼 술 잔을 머리 위로 들어 탈탈 털었다. 그러고는 지민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태형이었다.
"우웅, 왜요오- 지미니 한 잔 더 마실꺼야!"
"아씨, 존나 귀여워.. 지민씨, 제가 아이스크림 사줄테니까 그만 마셔요. 네?"
"아이스크림..? 알았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결국 못 이긴다는 듯이 태형의 손을 붙잡는 지민이다. 태형은 얼른 계산을 하고는 지민과 함께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랑- 청아하게 맑은 소리가 남과 동시에 편의점 문이 열렸고 어서오세요, 하는 알바생이 보였다. 태형은 휘청거리는 지민을 이끌고 아이스크림 코너로 향했다. 지민은 아이스크림이 있는 곳에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 시원해, 헤헤."
아이같이 아이스크림 박스에 얼굴을 담구고 있는 지민을 보며 태형은 살짝 웃어보였다. 어떻게 사람의 술 주정이 저리 귀여울 수 있는지. 지민에게 술 제안을 잘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민씨, 뭐 드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으음, 그럼 저는 초코아이스크림 먹을래요!"
그렇게 태형은 지민이 선택한 초코아이스크림과 태형이 선택한 딸기 아이스크림을 들고 계산을 끝냈다. 그리고 둘은 동네 앞에 있는 놀이터로 향해 두 개의 그네에 앉았다.
"태형씨가 사준 아이스크림이라 그런지 더 맛있네요."
"정말요? 술은, 깼어요?"
"엥 지민이 술 안마셨어요오-"
응, 안 깨셨구나. 다시 돌아온 지민의 혀 꼬임 소리와 애교소리에 반응을 하는 태형이었다. 그냥 평생 술 마신체로 안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저 입술, 자신의 입술과 닿으면 어떨까.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결국 고개를 휘휘 저은 태형이었다.
"아으, 차가워. 태형씨, 제 꺼 드셔볼래요?'
차갑다는 말, 자기꺼를 먹어보라는 말과 함께 태형의 이성이 절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저질렀나보다. 지민에게 그럼, 제가 차갑지 않게 해드릴게요 하고는 태형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 지민의 뒷 덜미를 잡아 그대로 지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지민이 놀란 표정을 짓자 태형은 그 틈을 파고들어 지민에게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입 안에서 지민의 입 안으로 옮겼다.
"자, 이제 많이 차갑지 않죠?"
"이..이게 무슨.."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싶지 않네요,"
앞으로 더 미안한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태형은 말 끝을 흐렸고 지민은 아직도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런 다음 퍼뜩 정신이 든 것인지 귀가 벌게 지며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가요, 지민씨."
"네? 네! 아, 가야죠!"
그렇게 둘은 말 없이 걸었고, 지민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직도 술이 덜 깼는지 실실 웃고 다녔다. 그런 지민 덕분에 어색함 없이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지민과 태형의 집 앞에 도달했고, 태형은 지민에게 잘 들어가란 말을 하고 뒤돌아 서는 순간 지민이 태형의 손을 붙잡았다.
"저, 그 태형씨.. 미안한데 오늘 하루만 태형씨 집에서 신세 지어도 될까요..? 열쇠를 집에 두고왔어요.."
"아, 알겠어요. 들어와요."
지민이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자신의 집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는 집, 브라운 톤을 좋아하는지 대체적으로 브라운 풍경인 태형의 집이다. 한 발작, 한 발작 들어서자 태형의 취향이 보이는 선반 위의 피규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유리잔들이 보였다.
"집이 깨끗하진 않지만 잘 곳은 있을거예요."
"깨끗하지 않다뇨, 저희 집보다 좋은걸요?"
아직도 술 기운이 약간 남아있는 지민이 태형을 올려다보며 헤헤 웃어보였다. 그렇게 지민은 비틀대며 태형의 침대에 그대로 고꾸라졌고, 바로 잠이 들었다. 잠든 지민을 보자 태형도 지민의 옆에 자리 잡고 누웠다. 태형은 지민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지민을 비추어 주던 불을 껐다.
지민에게 그 밤은 너무나도 짧았고, 잠 못 이루던 태형에게는 그 밤이 너무나도 길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 마주 본 체로 이 밤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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