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곳에서 길을 잃다
W. 윤 슬
내가 달리는 그 길 끝에는 항상 네가 서 있었다. 마치 고생 끝에 너를 만난 걸 알 듯이, 아주 환한 미소로. 그러나 지금, 네가 내 곁을 떠난 지금, 내가 달려가는 그 길 끝에는 네가 없었다. 네가 없는 곳에서 나는 너를 찾기라도 하는 듯 방황하고, 두리번거렸다. 나를 항상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너, 그런 네가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요즘 어때?]
너와 헤어지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옆에 네가 없는데 시간은 애석하게도 계속 달리고 있다. 나는 네가 없는 이곳에서 더 이상 길의 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이 방황의 끝에는 네가 있을까. 친구의 안부문자에 나는 더 네 생각이 났다. 왜 이럴까 내가. 네가 있을 때는 네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던 내가. 너 한 사람 없다고 예전의 내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너의 앞에서는 안 나오던 웃음이 나던 나였는데 너 하나 없다고 입가에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온다면 내 웃음도 되찾을 수 있을까.
“왜이러냐, 민윤기.”
답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며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소리가 아닌, 그냥 씁쓸한 웃음소리가. 밤낮이 구별되지 않게 방에 쳐놓은 암막 커튼. 커튼을 살짝 들추어보니 낮인 듯 빛이 새어나왔다. 새어 나온 빛으로 방을 둘러보고는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너 없다고 내가 이러고 사는 구나. 몇 병을 마신 건지 거실에 널브러져져 있는 소주, 맥주 등의 온갖 술병들. 한 달 동안 너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이러고 살았다는 게 너무 바보 같았다. 넌 나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시시콜콜한 궁금증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런 순간까지도 네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한심해 보이는 나의 모습에 절로 한 숨이
“윤기 형, 사랑해요.”
소파에서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고개를 돌렸다. 환청인 건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네가 없었다. 이왕 환청도 들렸는데 네 모습까지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내 옆에서 나의 안부를 물어볼 것 같은데 너는 내 옆에 없고 어디 있는지. 시도 때도 없는 너의 생각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나왔다. 나 울고 있는데, 어서 내 눈물 닦아줘야지, 다시 드는 너의 생각에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런 내가 역겨우면서도 너의 모습이 내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손 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손을 뻗자 닿는 것은 너의 따스한 온기가 아닌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나 정말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걸까.
“삐리리리리리-”
한동안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울렸다. 배터리 나간 줄 알았는데. 발신자를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벌써 동창회 할 때가 다 됐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받지 않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낮게 깔리는 나의 목소리에 괜히 내가 흠칫했다.
“우리 오늘 동창회 하는 거 알지? 너 맨날 빠졌잖냐, 그만 궁상떨고 한 번이라도 얼굴 비추러 나와.”
지금도 연락하는 유일한 동창 두 명 중 하나, 김남준. 한 달 전 지민이와 내가 헤어진걸 아는 유일한 사람 이기도하다. 궁상떨고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난 네가 내 곁을 떠난 뒤로 어떻게 살아간 걸까.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니 헬쑥해 보이는 얼굴에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내일 갈까, 동창회. 시간을 보니 약 5시간 정도 남은 상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다시 침대로 향했다. 시간이 남으면 네 생각을 할 게 뻔하니까 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에. 온갖 생각이 난무하며 나는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을 보니 저녁 5시. 동창회가 6시라 지금 쯤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켰다. 최근 들어 제일 말끔한 모습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약속장소에 들어가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김남준의 모습에 눈인사를 하고는 남준의 옆에 착석했다. 사람이 많아 그런지 느껴지는 시끄러운 분위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역시, 괜히 왔나. 그런 생각이 들며 나는 앞에 있는 맥주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무엇보다 오기 싫은 이유는 고등학교에서 나눈 지민이와의 추억 때문일까.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솟구쳐 오르는 너의 생각에 다시 속이 거북해졌다.
“아, 그 얘기 들었냐? 박지민 걔 요번에 새로 애인 생겼다던데.”
듣고 싶지 않은 너의 소식이 또 동창들의 목소리에 저절로 귀가 열어졌다. 나 보다 잘생겼을까, 키는 클까, 아님 혹은 여자랑 사귀는 걸까.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너라는 아니 하나 때문에.
“야, 야, 뭐 그런 얘기를 하고 그러냐?”
옆에서 나의 눈치를 보며 입을 털던 그 새끼들을 향해 자제를 시키는 남준의 모습에 저절로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쟤는 내가 얼마나 한심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숨 막히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 나는 안주도 없이 술을 계속 들이켰다. 뭔 놈의 술이 오늘따라 달게 느껴지는지. 옆에서 남준이가 말림에도 나는 끝도 없이 계속 술을 들이켰다. 너와의 추억을 잊기라도 하듯이. 잔뜩 술에 취한 나는 옆에서 2차를 가자고 하는 동창들의 말에 됐다고 거절을 하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택시도 잡지 않은 체, 그저 비틀거리는 이 두 다리로만. 그냥 오늘따라 끝도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윤기 형!”
신호등 건너편에 손을 흔들고 있는 너. 이게 너를 그리워하는 나에 대한 환상인지, 진짜 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너를 쫓았다. 천천히 한 발, 두 발. 너에게 닫기 2미터 전, 너를 안기 2미터 전에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너의 모습 때문에.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횡단보도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떨궜다.
“빠아아앙-”
그 때, 내 옆에서 울리는 요란한 클락센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빨간불’ 그제 서야 드는 생각. 너의 환상 때문에 내 목숨이 위험해 졌구나.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트럭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지막 한 마디를 중얼 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 해 오는 트럭에 치였다. 내가 쓰고 있던 모자가 공중에서 휘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마지막 까지도 너로 인해 내 삶이 끝나는 구나. 그리고 나는 영원히 깰 수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극 길 끝에 네가 있길. 그렇게 빌었는데 내가 달려 온 그 길 끝 어디에도 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 네가 없는 곳에서. 사랑했다. 아니, 지금 이 순간마저도 너를 사랑한다. 나 없이도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안녕, 내 길의 끝, 내 삶의 이유,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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