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쯤은
W. 윤슬
“띠리리리리리-”
고요한 집의 적막을 깨는 핸드폰 벨소리가 지민을 깨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이 시간에 누구야.. 밝은 화면에 지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본 순간 한 숨을 쉬었다.
“..여보세요.”
잠긴 듯 한 지민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전해졌다.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지민아, 나 어떡하냐..
핸드폰 건너로 들리는 한 남성의 목소리. 술에 취한 듯 혀가 조금 꼬인 듯 한 발음이었다. 지민은 그런 남성의 목소리에 피곤한 듯 마른세수를 하며 거기로 갈게요, 한 마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대충 껴입고는 집을 나섰다. 이런 바보 같은 생활을 한 지도 어연 3년 째.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불려나갈 때 마다 마음 한 편이 복잡한 지민이었다. 윤기와 지민이 알고 지낸지 3년, 그리고 지민이 윤기를 짝사랑 한 지 2년. 알게 된 계기는 그저 같은 대학교 과 선배였다. 그렇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이였는데 조별모임에 같은 조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 때 조 바꿔 달라 할 걸. 지민이 택시를 잡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항상 이렇게 새벽에 윤기의 술친구 겸 고민상담사 겸 해주다보니 윤기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선후배 사이를 뛰어넘게 됐다. 물론 지민 혼자서만.
“여기서 내려주세요.”
택시에서 내린 지민이 두리번거리며 윤기가 있는 가게를 찾았다. 딸랑- 적막한 밤거리를 경쾌하게 울려주는 종소리가 울리고 지민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혼자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윤기가 보이자 지민이 한 숨을 푹 쉬고는 윤기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 선배 때문에 한 숨이 늘었어. 지민이 윤기의 옆에 앉자 윤기가 지민이 앉은 자리를 슬쩍 쳐다보았다. 지민은 항상 그랬다는 듯 윤기의 옆에 앉아 묵묵히 윤기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술도 못하는 사람이 술을 아주 입에 달고 살지, 속으로 괜히 타박을 주면서.
“..나 혜영이라 헤어졌다.‘
이어지는 윤기의 말에 지민이 인상을 구겼다. 또 저 여자 얘기야. 항상 그랬다, 윤기는. 지민을 불러놓고는 ’오늘 혜영이랑 싸웠다.‘, ’헤어졌다.‘, ’헤영이가 다른 남자 만나는 것 같다.‘ 등의 지민이 관심 없는 얘기, 상관없는 얘기를 꺼내놓곤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윤기를 짝사랑 한지 2년째, 이걸 듣고 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걸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될까. 옆에서 이렇게 있으면, 항상 옆에 있으면, 선배가 여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면, 나를 한 번 쯤은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지며 지민은 윤기의 근처를 맴돌았다. 2년 째 제자리지만 언젠가 자신을 쳐다볼 그 날을 위해, 이렇게 묵묵히 옆에 있었다.
”싸우다가 홧김에..“
참 지랄들 한다. 지민이 아래에 고개를 박고 고개를 들지 않는 윤기를 쳐다보며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저런 식으로 한창 잠자리에 있을 지민을 불러내는 게 몇 번 째 인지. 항상 같은 패턴, 항상 같은 식. 너무 지겹다. 지민은 이런 미련한 윤기를 보며 자신이 왜 윤기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마음 가는대로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네.
’넌 연애 안하니?‘
수십 번도 들은 주위에서의 말들. 그럴 때 마다 지민은 하하 웃으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내가 짝사랑 하는 사람이 애인이 있다는 걸 어디서 터놓겠어. 그저 이럴 때 묵묵히 윤기의 옆에 있는 것, 그 것 밖에 지민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더 이상 다가가면, 이런 관계도 지속하지 못할 것 같기에. 답답한 마음에 지민이 윤기의 잔을 빼앗아 그대로 들이켰다. 그냥 헤어지면 될 일을, 왜 이렇게 궁상맞게 있는건지 지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옆을 봐주면 좋을 텐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을 윤기를 쳐다보았다. 지민이 옆을 쳐다보자 좀 전부터 보고 있었다는 듯 지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윤기가 있었다. 반 쯤 풀린 윤기의 눈동자에 지민이 흠칫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술을 들이켰다. 이윽고 옆에서 들려오는 윤기의 한 마디.
”..넌 연애 안하냐?“
윤기의 말에 지민이 술을 들이키던 손을 멈추고는 윤기를 쳐다보았다. 선배 좋아해서요. 윤기에게는 들리지 않은 지민의 내면의 목소리. 그저 윤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요.“
지민의 짧고 굵은 한 마디에 윤기가 지민에게로 가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겠지. 지민이 다시 술잔을 들어 들이켰다. 그냥, 나는 윤기 선배와의 관계가 여기까지가 아닌가. 괜히 욕심냈다가는 이 관계마저도 틀어질 것 같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자, 윤기의 말에 지민이 윤기를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밤이 참 길 구나. 둘은 아무 말 없이 바를 나와 공원으로 향했다. 윤기가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벤치에 앉자, 마치 실 가는데 바늘 가듯이 지민도 윤기의 옆에 착석했다. 그렇게 둘이 말없이 벤치에 앉아 하늘만 보았다. 하늘에서 빛나는 저 별이 괜스레 슬퍼보였다. 마치 지민이 윤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지민이 윤기를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잠이 든 건지 웅얼거리며 꾸벅꾸벅 조는 윤기를 보자 지민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선배는 아직 술버릇도 안 변했네요.“
지민이 윤기에게 혼잣말을 하듯 말하자, 윤기가 잠에서 깨어 지민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지민의 뒷목을 잡고 그대로 둘의 입술이 겹쳐졌다. 이게 무슨 일인지, 지민이 눈을 크게 뜨며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입을 떼고는 지민의 어깨에 기대는 윤기에 지민이 윤기의 손을 꼬옥 잡았다. 포옹을 하듯 지민에게 기댄 윤기가 지민의 귀에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나 좀 용서해주라, “
혜영아. 헤어진 여자 친구의 이름을 입에 담은 윤기에 지민이 뒷 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그렇구나, 내가 아니라 혜영이라는 그 여자였구나. 지민이 눈물을 머금으며 윤기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 지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한 번쯤은 나를 봐주지 않을까, 라는 지민의 생각은 틀렸다. 처음부터 윤기의 마음속에는 지민이 없었다. 안녕, 나의 오랜 짝사랑. 지민이 별을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을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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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윤 슬
이 글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모티브로 쓴 글입니다.
"박지민, 커피 마실래?"
윤기가 지민의 겉을 돈지 어연 일주일, 이 사람은 무슨 커피 못마셔서 죽은 귀신이 붙은건지 맨날 자기만 보면 커피타령하는 윤기에 지민은 익숙하다는 듯 마지못해 고개만 까딱거렸다. 어제 과음을 한 탓인지 지민은 깨지는 머리를 붙잡으며 책상 위로 철푸덕 쓰러졌다. 내가 남준이 형이랑 3차를 가는게 아니었어.. 괜한 후회를 하는 지민이 한 숨을 푸욱 쉬었다.
"어제 몇 시에 들어갔냐?"
윤기가 지민에게 커피를 건내며 스쳐 지나가는 듯 물었다. 한 4시 쯤? 들려오는 지민의 대답에 윤기가 마시던 커피를 푸웁 내뱉으며 인상을 찌뿌렸다.
"너, 어제 김남준 걔 만나고 그 시간에 들어갔다고?"
지민이 건내 든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뭐 애도 아니고, 어차피 편집장님 친구 분이시잖아요. 지민이 뭐가 문제냐는 듯 윤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시간 까지 외간 남자랑 있었다? 그것도 단 둘이?"
"왜 이래요, 내가 여자야? 편집장님 왜이래?"
지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미쳐버릴 것 같은 쪽은 윤기 쪽인데, 윤기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심장을 쥐고 쥐락펴락 거리는 지민이다.
.
지민씨, 나 좋아해? 조용한 회의 시간에 윤기가 자신에게만 커피를 건네는 지민에게 농담삼아 물었다. 윤기는 알고있을까 2년 전 자신에게 건넸던 농담 한 마디가 조롱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나 좋아하지마. 내가 아까워."
그 날 이후다. 내가 더 이상 민윤기를 좋아하지 않던 날. 상처 받을대로 받아 없는 눈물 있는 눈물 쏙 뺀 날, 술이랑 친구 하던 날. 입사 때 부터 쭉 2년동안 짝사랑 해 오던 민윤기를 마음 저 구석에 버려두었다. 항상 살갑게 말을 걸던 내 사랑을 차갑게 내팽겨치던 사람, 그게 민윤기였다.
"편집장님, 저녁 약속 있으세요?"
마음을 접기 일주일 전, 지민이 윤기에게 물었다. 엘리베이터를 잡던 윤기는 지민의 물음에 곤란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퇴근하던 석진을 붙잡았다.
"김석진! 저녁에 뭐하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나랑 저녁 먹자."
저녁 약속 생겨버렸네? 윤기가 석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지민을 향해 웃어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윤기를 향해 지민이 실소를 터뜨렸다. 저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내가 이러고 있냐. 윤기의 매몰찬 태도에 쓸쓸해진 지민은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원래 짝사랑이 이렇게 힘든거니.
"왜 그러고 혼자 술 마셔요, 청승맞게."
한 남자가 지민의 소주 병을 뺏어 들었다. 갑자기 공허해지는 자신의 손에 지민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그 남자가 서 있는 쪽으로 얼굴을 올려다봤다.
"...누구세요..?"
혼자 술 마시러 온 사람이라고 치죠. 그 쪽 처럼. 남준이 지민의 앞자리에 술 잔을 놓으며 말했다. 지민의 쓸쓸한 마음처럼 채워지는 잔을 보고 있자니 확 취기가 도는 지민이었다. 술 친구, 좋네요 그것도. 지민이 남준에 의해 채워진 술잔을 한 번에 털어넣으며 싱긋 웃었다.
"무슨 안좋은 일, 있나봐요."
남준이 비워져있는 지민의 술 잔을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짝사랑이라는게, 참 힘드네요."
서로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지민의 말에 남준이 안쓰러운 듯 지민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이 나네. 첫사랑, 비극으로 끝난 내 짝사랑. 그래서 그런지 포장마차에 앉아있는 지민을 보고 마주보고앉은 걸지도 모르겠다. 짝사랑이 힘들다는 사실은 남준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그래서 말 없이 지민의 술 잔을 채워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저기요,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
"몰라여 몰라! 마시고 주글꺼야!"
애석하게도 지민의 주량은 소주 반 병. 오늘따라 술이 달게 느껴지는 지민은 남준이 따라 준 술을 끊임없이 들이켰고, 지민의 주량을 알지 못하는 남준은 그저 술을 따라 준 것 뿐이었다. 얼마나 마신건지 혀가 꼬인 지민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자식을 그냥!.. 지민이 허공에 멱살을 잡는 포즈를 취하자, 단단히 취했구나 하고 남준은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쁜 새끼.. 눈에 띄기만 해봐..!"
그래도, 귀여운 느낌이 있나. 어느샌가 익숙해진 지민의 술 주정에 자리에 앉아 지민의 술 버릇을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새빨게진 두 볼, 꼬인 혀, 헝클어진 머리. 어딘가가 귀엽다는 느낌에 남준이 고개를 저었다. 술 주정 부리는 사람 앞에 두고 뭐하냐 김남준. 남준은 지민이 계속 마시려던 술 잔을 빼앗아 한 입에 털어넣었다. 아주머니, 여기 계산이요!
"저기, 집이 어디에요?"
남준이 지민을 자신의 차 뒷자석에 앉히며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잠에 취해 색색 거리는 숨 소리 뿐.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해.. 집에 데리고 가? 남준에게는 아마도 이 고민이 살면서 최대의 고민일 것이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워낙 주위에 철벽을 친 탓이라. 결국 남준은 운전자 석에 올라 타 자신의 집 방향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지민은 낯선 천장, 낯선 침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나 술 마시고 실수한거니? 술이 웬수다, 웬수야.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던 지민은 방 문을 여는 소리에 시선이 문을 향해 옮겨졌다.
"깼어요?"
저 사람은 또 누구니. 지민이 아예 해탈한 듯 남준을 쳐다보았다. 나 어제 뭐 했어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지민에 남준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지민이 쪽팔리는 듯 고개를 숙여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순간 스쳐가는 일이 생각났다.
"..지금 몇 시에요?!"
출근. 애석하게도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현재 시각 10시 3분. 완전 지각이네. 지민은 남준을 제치고 부랴부랴 방 문을 나와 현관 문 앞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어떡해 나는 이제 편집장님한테 죽었다.
"저 급해서 먼저 갈게요! 감사했습니다!"
도어락을 열고 급하게 나가는 지민을 본 남준은 피식 웃었다. 뭐가 저리 급한건지. 다시 볼 수 있을까, 꽤 내 스타일 이던데. 남준은 지민이 누워있던 침대에서 눈 길을 떼고 거실로 나와 커피를 마셨다. 우리 또 봤으면 좋겠네요.
.
참 운명같은 만남이다. 남준과 지민이 서로 알고 지낸지 어연 2년. 어쩌다 보니 다시 만나게 됐고 남준이 윤기의 친구라는 것도 알게 된 지민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쩜 친구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다른건지. 둘이 친해진 것도 신기하다고 느끼는 지민이다.
"편집장님, 오늘 오후 4시에 모델 촬영 있어요."
지민이 윤기에게 서류를 전해주며 말했다. 서류를 자세히 검토하던 윤기는 알았다며 지민에게 가 보라고 손짓했다. 그러다 다시 부르는 윤기의 목소리.
"박지민, 오늘 야근이지? 데려다 줄게."
괜찮은데요. 들려오는 지민의 답에 윤기가 인상을 찌뿌렸다. 그 시간에 버스도 없을텐데 무슨. 윤기의 투덜거림에 지민이 할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지민의 입장에서는 윤기가 저러는게 불편할 따름. 몇년 전만해도 그렇게 쌩까더니 어느 순간부터 점차 저러는게 심상치 않았다.
"편집장님 나 좋아해요?"
저번에 윤기가 지민을 데려다 줬을 때 지민이 윤기에게 한 질문이다. 윤기의 얼굴에서 당황함과 곤란함이 공존하며 나온 한마디.
"아니야, 내, 내가 무슨.."
이 사람도 참 거짓말 못한다 싶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 거짓을 얘기해주고 있으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확실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지민이다. 업무시간에 나 무슨 생각 하는 거니. 머리를 좌 우로 흔들던 지민은 다시 시선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12월이 끝나가고 있다보니 새 잡지를 내기 위해 바쁜 지민이었다. 이거 언제 다 하냐, 야근 엄청 오랫동안 하게 될 거같은데. 벌써부터 한 숨이 밀려왔다.
"어, 민윤기 편집장님! 여기까지 안나오셔도 되는데-"
모델 촬영을 맡은 사진작가가 윤기를 반기듯 악수를 청했다. 깔끔하게 정리 된 세트장, 아직 모델이 도착을 안 한것 같고. 빠르게 세트장을 스캔하던 윤기가 사진작가의 인사에 악수를 받아주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다 준비하는데 제가 빠질 수가 있나요."
윤기의 말에 담당 사진작가는 어색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윤기는 그 바닥에서 소문 난 깐깐한 사람으로 유명하기 때문. 한치의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는 사람, 꼼꼼함이 도가 지나친 사람 등 여러가지의 의미로 불린다. 덕분에 죽어나가는 건 현장스탭들과 사진작가. 쉬라고 해도 쉬지않는 윤기이니 아무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이래저래 흘러가는 시간, 아무 말 도 없는 윤기. 그런 윤기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지만 촬영은 나름 잘 끝냈다.
"수고하셨어요. 그럼 모레에 저희 회사에서 뵙죠."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보더니 윤기가 담당 사진 작가에게 말을 했다. 오늘따라 말 수가 더 적은 윤기에 이상한 느낌이 든 사진가지만, 조금은 들떠보이는 윤기의 모습에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사진 촬영이 잘 끝난 건가. 사실 윤기는 얼른 회사로 들어가 지민을 보고싶어 꽤나 들떠 있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무표정을 지으니 괜스레 주위에서 경계하는 눈초리지만. 현재 시각 밤 9시. 조금 늦게 끝난 촬영 탓에 툴툴 거리며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래도 지민이 야근이라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닌게 다행이었다.
"야, 박지민 안 피곤하ㄴ.. 김남준 네가 여긴 어쩐 일?"
사무실로 들어가던 윤기의 반가운 발걸음에 반가운 듯 아닌듯 한 남자가 지민의 옆에 서 있었다. 새끼, 기럭지 하나는 끝내주네. 윤기가 새삼스레 감탄하며 남준에게로 다가갔다.
"아,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너도 볼겸, 지민씨도 볼겸?"
남준이 웃으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윤기에게 말했다. 윤기가 오든 말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지민. 그런 지민이 괘씸한 윤기지만 자신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기에 묵묵히 옆에서 바라만 봤다. 일 분, 일 초도 빨리해야 하는 야근 시간. 지민의 책상에 걸터앉은 윤기가 팔짱을 끼며 남준을 바라봤다. 하루라도 지민이가 남준이 얘기를 안 꺼낸 적이 없기에 괜히 질투심이랄까, 무언가가 윤기의 속에서 솓구쳐 올라왔다. 일 등 젠틀할 것같은 남준 덕에 요즘 지민은 남준에게 꽂힌 것 같았다.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윤기의 생각이 오가는 도중 지민이 팔을 쭈욱 올리며 기지개를 폈다.
"다했..어, 편집장님 언제 오셨어요?"
피곤한 여력이 가득한 지민의 눈동자가 윤기에게 시선이 멈췄다. 이 인간이 왜 여깄어. 하품을 하며 묻는 지민에 윤기가 피식 웃었다. 온지 엄청 됐는데.
"윤기야, 우리 술 한 잔 하러 갈래? 오랜만에."
남준의 달콤한 제안에 윤기가 곧바로 콜을 외쳤다. 물론 지민이도 가는 걸로. 얼떨결에 같이 가게 된 지민은 가방을 챙겨 윤기와 남준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피곤하기도 한데 뭔가 술이 땡기는 밤이랄까. 좋게 생각하지 뭐. 셋이서 나란히 발 걸음을 마주해 도착한 곳은 회사 앞 포장마차. 여기 되게 자주 오는 것 같애.
"나 여기서 지민씨 처음 만났잖아."
"아, 맞아요! 근데 그 기억은 지워주셨으면.."
남준이 자리를 잡으며 말하자 지민은 그에 대꾸하다 무언가가 생각난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가운데 낀 윤기는 어리둥절 그 자체. 딴 곳도 아니라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궁금증과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남준을 쳐다보자 남준이 방언 터지듯 지민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나 그 때 지민씨 뻗어서 엄청 당황했었잖아!"
남준이 웃으며 얘기하자 지민은 볼이 빨개져 홍당무가 되기 직전이었다. 남, 남준씨 한 잔 드세요! 남준의 입을 막기위해 괜히 남준의 술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물론 자신의 술 잔에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이 달달하냐.
남준의 이야기가 막바지가 될 때 쯤 옆에서 쿵 소리가 들려와 쳐다보니 지민이 뻗었다. 그런 지민을 보자 한 숨부터 나오는 윤기. 예전에도 남준이었어서 다행이지 다른 이상한 남자가 얘 데려갔으면 어쩔 뻔 했냐. 술을 못 마시면 적당히 좀 마시던가.
"자, 윤기야. 너도 한 잔 해."
남준이 본격적으로 윤기와 대화를 할련지 윤기의 술 잔을 가득 채워넣었다. 오랜만에 둘이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오고가고, 술 병이 오고갔다.
"나 요즘 좋아하는 사람 생겼나 봐."
술 잔을 비우려던 윤기의 손이 남준의 한 마디에 멈칫했다. 제발, 이 소리만은 듣고싶지 않았는데. 남준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지민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옆에 없으면 보고싶고, 일하는 모습도 귀엽고, 자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이렇게. 남준의 폭탄 발언에 윤기는 머리가 핑 돌았다. 왜 하필 너냐.
"그래, 뭐, 잘 해 보던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 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나 이번에도 한 발 늦은걸까. 넌 나의 뒷 모습 밖에 보지못하고 난 너의 뒷 모습 밖에 보지 못하는 걸까. 지민을 향한 다정한 남준의 손 길에 윤기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옆 집 사람
[작가님?]
written by 윤 슬
"아으, 머리야.."
지민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술을 많이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타입이라 어젯 밤 태형씨랑 술을 마시던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뭐 실수하진 않았겠지? 지민이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던 도중, 낯선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퍼뜩 정신이들었다. 나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니.
"어, 지민씨. 일어났네요."
태형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방문을 열며 들어왔다. 그런 태형에 오히려 되려 당황한건 지민이었다. 왜 태형씨가 여기있는거지?
"저, 저 여기 왜 있는거예요?"
지민이 조심스럽게 태형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지민의 표정에 태형은 살며시 웃었다.
"와,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태형은 지민에게 천천히 다가가 지민의 코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지민을 보자, 지민은 그런 태형의 눈빛에 머리를 최고속도로 굴렸지만 도저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놈의 술을 끊던가 해야지.. 눈을 도르륵 굴리는 지민을 보고있던 태형이 천천히 입을 뗐다.
"지민씨 어제 저랑 술 마시구, 열쇠 놔두고 왔다면서 저희 집에서 잤잖아요."
물론 진짜 잠만 잤지만, 테형은 이 뒷말을 조심스레 삼켰다. 어젯 밤, 태형은 한 숨도 편히 자지못했다. 어떻게 이 사람을 앞에두고 편하게 잘 수있단 말인가. 지민은 색색 거리며 아주 잔 것에 반해, 태형은 머릿속에서 오만가지의 생각이 다 들면서 지민의 얼굴을 감상한다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태형을 지민이 알리가 있나.
"아, 조금 기억이 나네요.."
이런 자신이 쪽팔린것인지 지민은 이불을 목 끝까지 잡아당겨 덮었다. 그런 지민이 귀여워 태형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던 것 같다.
"근데 지금 몇 시에요?"
지민이 이불 속에서 꾸물꾸물 대며 태형에게 물었다. 12시 36분, 태형이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12시 36분.. 12시 36분..?!?!
"헐!"
지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 태형은 어리등절. 그저 눈을 크게뜨고 지민이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떡해 어떡해..!" 지민은 멘붕이 온 듯 부랴부랴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태형의 말에 오늘부터 1시에 알바를 나가야하는데 늦었다는 것.
"알바 장소 여기서 멀어요?' 태형이 지민을 향해 물었다.
"버스타면 30분? 정도 걸려요!' 지민이 다급하게 머리를 정돈하며 태형에게 말했다. 그러자 태형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제가 태워드릴까요? 저 이래봬도 빨리 운전 할 수 있는데."
태형이 지민의 눈 앞에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에 지민은 머리를 정돈하던 손짓을 멈칫 하고 마치 고양이의 눈빛으로 태형을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바쁘신거, 아니에요..?" 지민이 슬쩍 태형에게 물었다. "음, 지민씨라서 태워주는 거랄까요?" 태형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지민을 보며 대답했다. 그에 지민은 저게 무슨말인가 곱씹어 보다가 태형의 안가도 돼요? 라는 말에 부랴부랴 손을 씻고 현관 문을 나섰다.
"근데, 무슨 알바에요?" 태형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지민을 향해 물었다. "그냥, 카페 서빙? 알바에요." 지민이 차에 올라 타 태형을 보고 말했다. 멀뚱히 앉아있는 지민을 본 태형은 지민에게로 다가가 지민의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그리고는,
"저 운전 험하게 할지도 몰라요."
싱긋- 웃는 미소는 덤 이랄까. 태형의 그런 미소에 지민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태형이 잘생긴 얼굴이라는 건 알고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겨보였달까. 지금 숨을 헙 하고 참은 것도 아마 태형의 예고없는 잘생김이 훅 치고 들어와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른다.
"빠, 빨리 가야죠..!" 지민이 그런 태형을 외면하는 척 하며 얼른 가야한다며 태형을 재촉했다.
태형은 지민을 데려다주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렸다. 딱히 뭘 살려고 갔다기 보다는 그냥 혹시 오늘 밤에 지민이 피곤하지 않다면 옥상에서 술을 마시자고 할 생각이었다. 마침 오늘 밤에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뉴스가 떠서 그걸 핑계로 혹시나 해서.
대충 안줏거리와 맥주 몇 캔을 산 태형이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올라탔다.
'삐리리리-' , 태형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야, 김태형! 뭐하냐?]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유쾌한 목소리. 그의 친구 호석이었다.
"웬 일이래, 니가 전화를 다 하고." 태형이 웃으며 말하자 호석은 술을 마시고 싶은데 다른애들이 바빠서 전화했다고 한다. 얘는 뭐 내가 부르면 튀어나가는 기계인줄 아나봐..
[내가 쏜다.]
는 무슨. 호석의 말에 바로 어디로 가야하냐고 묻는 태형이다. 집에 갔다가 갈까하다가 그냥 바로 호석이 말한 장소로 출발했다.
'딸랑-'
태형이 들어오는 소리에 호석은 태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형은 그런 호석을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호석의 앞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네가 다사고?" 태형이 주문을 하며 호석에게 물었다.
"그냥, 술 마시고 싶은데 부를 사람이 한가한 너 밖에 없더라." 호석의 말에 태형은 그런 호석이 왠지 짠 하면서도 '한가한' 이라는 수식어에 발끈했다. 한가하다니, 원고 해야하는데. 물론 시간이 아직 있긴 하다만.
"요즘 바쁘냐?" 호석이 태형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그냥 그렇, 아, 재밌는 일이 하나 있네." 태형의 말에 술을 마시던 호석이 궁금하다는 듯 태형을 향해 궁금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태형은 옆 집에 새로 이사 온 지민이 얘기를 시작했다. 생긴 것도 귀엽다는 둥, 술버릇도 귀엽다는 둥, 자는 것도 예쁘다는 둥, 온갖 지민이의 대해서 봇물 터지듯 호석에게 말흘 했다.
"그래서, 니 애인이시겠다?" 가만히 듣고있던 호석이 태형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고기를 먹으려던 태형의 젓가락 질이 움찔했다. 그런 태형을 보자마자 호석은 에? 안사귀어? 라며 태형에게 되물었다.
"지금 진행 중이야."
진지한 태형의 말에 호석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태형의 오랜 친구로서 이런 태형의 모습은 진짜 보일까 말까 하는 모습이었다. 기런 태형의 모습에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같이 잤다며, 그것도 한 침대에서." 호석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근데 안사귄다고? 자신이 아는 김태형이라면 절대 그럴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야, " 호석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태형을 불렀다. 그에 태형은 뭐냐는 듯 호석을 쳐다보자, 호석이 입을 열었다.
"설마, 진짜 잠만 잤냐?"
푸흡- 호석의 말에 마시던 술을 뿜어버린 태형이다. 신선한 태형의 반응에 호석이 놀라며 진짜?? 를 반복해서 물었다. 천하의 그 김태형이 진짜 잠만 자다니.
"친구야, 난 니가 고자일 줄은 몰랐, "
호석의 말에 태형이 급하게 호석의 입에 쌈을 싸서 쑤셔넣었다. 얼떨결에 입에 쌈이 들어간 호석은 먹을게 입에 들어오니 그냥 오물오물 씹었다. 태형은 한 숨을 쉬며 그런게 아니라했다. 솔직히 지민의 술 버릇을 보자마자 좀 위험했다. 너무 귀여운데 색기까지 흐르니 순간 이성의 끈을 놓칠 뻔 했었다. 결국 그러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키스를 했지만.. 그래도 많이 참은 것이라고 태형은 자부했다.
그 뒤로 호석과 태형은 부어라 마셔라 죽을 듯이 마셨다. 호석과 술 마시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차를 끌고온 것도 잊은 체 그렇게 마셨던 것 같다.
결국 대리운전을 부른 태형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풀썩 쓰러진 태형은 아직 남아있는 지민의 체취가 풍겨오자 그 체취가 묻은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특유의 달콤하면 서도 상큼한 지민의 냄새가 알싸하게 태형의 콧등을 찌르자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왔다. 오늘 지민씨랑 별똥별 봐야 하는데..
"수고하셨습니다!"
지민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조금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지민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역시 고용주에게 잘 보일려면 일을 잘해야 돼. 지민은 속으로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 때 문득 떠오른 태형, 지금쯤 뭐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헉, 자기도 모르게 태형을 생각한 지민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내가 언제부터 태형씨 생각을 한 거지. 지민은 시간이 몇 시쯤 된지 보기위해 핸드폰을 키려는 순간, 핸드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다가 냅두고 왔지? 기억을 찬찬히 짚어보던 지민은 태형의 집에 놔두고 온 자신의 핸드폰 생각이 났다.
"아, 박지민.. 정신 좀 차려라.." 스스로를 탓하던 지민은 어느새 자신의 집 앞까지 도착한 버스를 보고 허겁지겁 버튼을 눌러 버스에서 내렸다.
일단 핸드폰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자신의 옆 집인 태형의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이상하다, 왜 대답이 없지. 아직 안 들어오셨나? 지민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포기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열리지 않을것 같았던 태형의 집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것을 본 지민은 살며시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불을 키지 않은 것 인지 온 통 깜깜한 탓에 손을 휘적휘적 거리던 순간,
"아-!"
지민의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 질 뻔한 찰나, 무언가가 지민의 허리를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들려오는 잠이 덜 깬 나즈막한 목소리.
"괜찮아요?"
그 목소리와 손의 주인은 태형이었다. 방금 잠에서 깼는지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가 은근 섹시하게 들렸다.
"혹시 제가 태형씨 자고있는데 깨운거예요..?" 지민이 눈치가 보이는 듯 살며시 태형에게 묻자 태형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지민씨. 지금 몇시에요?" 태형이 지민에게 묻자, 지민은 태형의 침대 옆에 놓여져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발견하고는 시간을 보았다. 현재 11시 10분 이었다. 시간을 보자 곰곰히 생각하던 태형은 지민을 향해 물었다.
"지민씨, 별똥별 본 적 있어요?" 태형의 말에 지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엄청 어릴 때 보고 못봤다고 답했다. 지민이 그건 왜 묻냐는 식으로 태형을 쳐다보자 태형은 지민을 향해 씨익- 웃었다.
"우리, 별똥별 볼래요?"
태형의 말은 지민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태형은 좀 전에 샀던 맥주와 안줏거리를 들고 지민과 함께 빌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말 별똥별이 내리기라도 할 것인지 하늘이 맑았다. 맑은 하늘 덕분에 평소 잘 안보이던 별들이 잘 보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태형과 지민은 옥상에 놓여져있는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캔을 땄다. 오늘따라 술이 더 달게 느껴지는 건 기분탓 일까.
"어, 떨어진다." 지민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가리키며 태형에게 말했다.
"소원 빌었어요?"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헉 하며 구경한다고 잊어벼렸다고 답했다.
"태형씨는요?"
지민의 물음에 태형이 웃으며 소원을 빌었다고 말했다. 무슨 소원이냐며 재차 묻는 지민의 말에 태형은 자기 얼굴을 지민에게로 밀착시키고는 말했다.
"비밀이에요." 태형의 예고없는 들이댐에 놀란 지민이 눈을 크게 뜨고 깜빡였다. 그 때 또 한번의 별똥별이 떨어졌다.
"어, 지민씨. 얼른 소원!"
태형의 다급한 부름에 지민은 얼른 소원을 빌었다. 빌었냐는 태형의 질문에 지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지민과 태형은 어제 처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러던 도중, 태형이 지민을 보고 말했다.
"지민씨, 지민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태형의 질문에 약간 술에 취한 지민이 말 없이 태형을 쳐다보았다.
"저는 지민씨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요."
지민이 아무 대답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태형은 차마 떼지 못하겠는 입을 뗐다.
"지민씨, ..지민씨 좋아해요." 태형의 충격적인 발언에도 지민은 아무반응 없이 가만히 태형을 쳐다보기만 했다.
"저도 제가 이상한 거 아는데..!" 태형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레 태형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는 지민 때문에. 지민은 짧은 입맞춤을 하고 태형에게서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어느새 붉어진 지민의 볼.
"저는 태형씨, " 지민이 입을 떼는 찰나, 태형이 지민의 볼을 잡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긴 입맞춤을 끝으로 태형이 나즈막하게 지민에게 속삭였다.
"제가 많이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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