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뷔진] Love Scenario 01
W. 윤 슬
오랜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여기저기서 부딪치는 잔들, 워낙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따로 음료를 시켜 술자리 분위기에 맞게 휩쓸려가고 있었다. 왜 맥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취한 것 같지. 옆에서 풍기는 알싸한 술 냄새에 괜히 술은 입에도 안 댄 자신이 알딸딸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십대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티를 내듯 이런 술자리를 놓칠세라 빠짐없이 참석을 하곤 했다. 내일은 없다는 듯 술에 취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괜스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술자리가 불편한 느낌. 아, 동창회 괜히 왔나. 괜히 마음속으로 신경질을 부렸다. 반갑지 않은, 혹은 반가운 얼굴들을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마음 속 한 켠 속 무언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4년만인가? 못 알아 볼 뻔 했어!”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이윽고 한 친구의 외침에 모두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 생각났다. 내가 허전한 이유. 어쩌면 저 반갑지 않으면서 반가운 얼굴을 내심 기다렸나 보다. 외국에서 살다 온 티를 내는 건지 4년전과는 다른 더 훤칠해 진 외모와 벌어진 어깨, 그리고 저 여전한 도톰한 입술까지. 반가운 마음에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지, 많은 이들의 주목에 당황한 건지 공중에서 방황하던 너의 시선이 너를 진하게 쳐다보고 있던 나의 시선과 맞닿았다. 눈이 마주치자 ‘안녕,’하고 여전히 오밀조밀하게 생긴 너의 입술이 작게 떨어졌다. 그 한마디에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어 바로 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닌지. 마음 같으면 당장 너에게 가서 너의 손목을 붙잡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사방이 지금까지 오래 봐 왔던 사람들이고 다시 또 볼 사람들이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잊어버려,’ 수도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잊었다고 생각했고 더 볼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보자 마자 예전 기억이 되살아날 줄 누가 알았겠어. 씁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괜히 옆자리에 앉아있는 지민의 술잔을 빼앗아 들이켰다.
“얘가 왜 이래, 안 마시던 술을 다 마시…”
나의 시선을 따라간 지민이 석진을 본 듯, 하던 말을 더 하지 않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쟤 왜 여기 있냐…’ 나에게 속삭이던 지민이 다시 술잔을 꽉 채우고는 다시 들이켰다. 그러게 말이다. 쟤가 왜 저기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주목 받다가 지쳤는지 빈자리인 내 앞자리에 착석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
“오랜만에 보네. 4년만인가? 그 동안 연락도 없었네.”
연락은 했는데 네가 안본 거 겠지. 괜한 신경질에 술잔을 들이키고 테이블에 큰 소리가 나도록 쾅 내려놓았다. 짜증난다. 근데 또 짜증나게 잘생겼, 아니, 예쁘다. 너를 잊으면서 지낸 지나간 세월이 무성하게 예쁘다. 전부터 네 얼굴만 보면 헤프게 웃음이 나곤 했는데 나도 여전한가 봐, 아직도 그런 거 보면. 달라진 거 하나 없는 나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보고 싶었어.”
왜 이런 말이 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건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지. 나의 어이없는 발언에 너는 실소를 터뜨렸다. ‘참 빨리도 말해준다…’ 작게 중얼거리는 너의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러게, 이런 얘기를 왜 이제 했을까.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왜 이 말 한 마디가 어려웠을까 그때는. 미숙했다. 너무 미숙한 열일곱의 사랑이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심지어 보고싶다는 간단한 표현도 잘 하지못하는 그런 미숙한 나이. 그 때의 우리의 미숙한 사랑에 가려진 지금의 우리의 성숙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 우리의 시나리오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여기 자리 있어?”
이사를 와서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던 석진과 그저 새학기가 어색하기만 한 태형의 첫 만남이었다.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라 생글생글 웃으면서 최대한 상냥하게 물어봤는데 지금 와서야 그때 당시에 있었던 주변인들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험악한 얼굴로 물어봤다고 한다 (물론 석진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먼저 앉아 있었던 태형이 보기보다 소심한 성격이라 그때 석진을 보고 흠칫 했을 것이라고. 아마 모든 게 다 처음인 곳이라 긴장한 탓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로맨스 드라마처럼 특별하게 시작된 이야기가 아닌 그저 평범하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 그렇게 우리의 짧으면서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같은 반 친구. 그게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 명칭이었다. 각자 성향이 달라 반에서 한 두 번 말은 섞어 봤어도 따로 만나거나 학교에서 같이 다니지는 않았다. 이런 우리의 미지근한 관계가 바뀌기 시작했던 순간은 바로,
“너네 둘이 사귀냐?”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누구나 연애세포가 한창 들끓을 학창시절 때 그런 경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이 직접 겪지 않더라도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은 친구를 본적이 있을 거다. 학교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자주 붙어 다니면 저절로 따라오는 수식어, 어느 순간 반에서는 태형과 석진의 뒤에는 그런 수식어가 붙었다. 이런 수식어가 붙어도 처음에는 태형과 석진은 서로에 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시에 태형은 옆 반에 현정이라고 좋아하는 이성이 있었고 석진도 4년간 짝사랑 했던 소꿉친구인 남준에게서 마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태형이 현정을 좋아하는 건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직접 태형에게서 듣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었다. 열 일곱 남 고딩 아니랄까봐 태형의 친구들이 온 동네방네 고성방가를 하고 다녀 평소 정보통이 늦는 석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한 둘이 엮이게 된 사연은 태형으로부터 시작된다.
“야, 우리반에 김석진, “
좀 예쁘지 않냐? 푸웁, 느닷없는 태형의 말에 성재는 먹고 있던 라면을 그대로 뱉었다. 아, 드럽게. 그런 성재를 보며 태형은 혀를 찼다.
“너, 너 취향이 그런 쪽이었냐..?”
태형은 말까지 더듬으며 말하는 성재를 한 번 스윽 쳐다보고는 다시 눈 앞에 있는 게임에 집중했다. 그건 아닌데 그냥 예쁘잖아. 툭 내뱉는 태형의 한마디에 성재는 그런가, 하고 고민을 하더니 뭐, 그렇긴 하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하고 금새 결론을 짓고는 다시 먹고 있던 라면에 집중했다. 이 일 이후로 태형은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성재에게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성재가 자신과 석진에게 둘이 사귀냐고 묻기 전 까지는. 거창한 성재의 말에 비해 돌아오는 태형과 석진의 반응은 미적지근 했지만. 태형이 현정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온 동네방네에 고성방가를 하고 다녔던 태형의 친구들 중 한 명이었으니. 아 그리고 태형은 이미 현정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 포기할 태형인가. 간간히 현정과 연락은 주고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태형은 태형대로, 그리고 석진은 석진대로 지내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어느새 1학기가 지나고 있었다.
10대들의 친화력은 빠르다더니, 벌써 다들 자기 반에 스며든 듯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어느덧 약 4개월 정도가 지나고 여름방학식이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방학 잘 보내라는 식상한 인사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장난끼가 발동한 성재가 신발을 신으러 반을 나가는 석진을 불러 세웠다.
“방학식인데 태형이랑 데이트 안 가?”
낄낄거리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태형과 석진의 사이를 놀리는 성재. 물론 석진도 이게 자신을 놀리는 말인지 잘 알고 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받아치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새기면서 (그런 말 한 적 없다) 석진은 성재의 옆에 있는 태형에게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태형과 눈을 마주쳤다.
“그럴까?”
눈웃음. 누가 봐도 나 얘랑 뭐 있어요 하는 티를 내야 한다. 세게 나가면 건드리는 법 없다고. 자꾸 둘 사이를 엮는 성재에 지쳤는지 성재에게 강한 한 방을 선사하는 석진이다. 그런 석진의 행동에 석진에게 장난을 걸었던 성재, 그리고 석진에게 당한 태형은 얼음 상태. 수줍은 듯 하지 말라고 하는 석진을 상상했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이렇게 묵직한 한 방을 선사 해놓고 방학 잘 보내라며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는 호석과 지민과 함께 유유히 학교를 나가는 모습에 성재와 태형은 넋이 나갔다.
“쟤 뭐냐..”
얼이 빠져서는 석진의 그림자를 시선으로 쫓던 성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보통이 아니네, 라고 말하며 태형에게 눈을 돌리는 순간.
“야, 너 왜 그래?”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올라선 부동자세로 있던 태형에게 성재가 물었다.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지. 얼떨떨하면서도 심장이 쿵쾅쿵쾅 빨리 뛰는게 느낌이 영 좋지 않다. 성재가 옆에서 뭐라고 하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 떨림에 대한 출처를 알고 싶을 뿐.
“무슨 생각이야?”
초콜릿을 먹으려던 석진에게 지민이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초콜릿 봉지를 까려던 석진의 손이 잠깐 멈칫하고 지민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냥, “
재밌잖아. 이렇게 말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석진에 지민과 호석은 혀를 찼다. 남 놀리는 버릇 좀 고치라니까. 호석이 석진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보고 있으면 귀여운 걸.”
입안에 달달하게 퍼지는 초콜릿의 향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석진이 말하자 취향 독특하다며 고개를 젓는 호석과 지민이다. 뭐 어때,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길을 걷는 석진이다. 자신이 한 어깨동무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온 지 모른 체. 당한 사람은 얼이 빠져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런 일 따위는 벌써 잊어버린 듯 천하태평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 시발점이 여기에 있을지도.

감아
w. 윤 슬
“지민씨, 이거 복사 좀!”
“지민씨, 여기 커피!”
“지민씨, 여기전화!”
“지민씨,”
“지민씨!”
신입사원은 언제나 정신이 없다.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부탁해 오는 목소리들. 아니, 부탁이라는 단어보다 시킨다, 라는 의미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이 회사에 출근한 지 3일 된 지민은 꽁지 빠지도록 부서 안을 뛰어다니는 중이다.
“하아아아-”
퇴사할까. 겨우겨우 자리에 앉은 지민이 한 숨을 내뱉었다. 3일 만에 퇴사 할 생각이라니. 그 정도로 힘들었다. 대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6시 칼 퇴근이라더니 칼 퇴근은 무슨, 입사 첫 날부터 야근을 했다. 공무원을 하던가 해야지. 속으로 상사 욕을 퍼붓는 지민이다.
“지민씨, 잠깐 내 방으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없이 터덜터덜 팀장의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또 무슨 용건일까 하고. 하아, 팀장 실에 들어오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한 숨을 쉬어버렸다. 아, 망했네.
“지민씨, 힘들어요?”
“아, 아니에요!”
무언가 압박해오는 민팀장의 말에 저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어선 지민이다. 상사 앞에서 한 숨을 쉬다니 내가 미친거지. 속으로 자신을 무한 번 자책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윤기의 말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 결론은 다시 해 오란 소리다. 오늘 참 운도 지지리도 없구나, 서류를 들고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오는 지민에 지미의 옆 자리에 있는 김대리가 말을 걸었다.
“지민씨, 또 깨졌어?”
놀리듯 웃으며 말하는 태형에 지민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팀장님은 나만 갖고 그래.. 괜히 신경질적이게 워드를 두드렸다. 나중에 집에 가면 다 이를 거야 다짐하면서.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퇴근할게요.”
“저도 퇴근할게요.”
“그럼 저도 이만.”
하나 둘 씩 일어나는 소리에 지민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니, 할려고 했다.
“지민씨, 오늘 야근해야 할 것 같은데?”
저를 붙잡는 이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네..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먼저 갈게요, 머쓱하게 웃고는 작은 목소리로 파이팅 하고 자리를 뜨는 태형을 보며 지민은 울상을 지었다. 마지막 남은 팀원이었는데. 태형에게 울상인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고는 팀장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윤기는 그런 지민을 바라보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지민이 윤기에게로 한발 한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윤기의 앞에 도달하자,
“그러네요.”
하고는 지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둘은 팀장실 쇼파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뭐, 다들 예상했듯이 이 둘은 사귀는 관계. 오늘부로 거의 2년 째 열애중이다. 지민이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학교에 다닐 때부터.
“회사 생활은 어땠어?”
“너무해요, 맨날 나만 꾸짖고.”
“미안해, 괜히 오해받을까봐.”
다정하게 물어오는 윤기의 말에 지민이 입술을 삐쭉거리며 투덜투덜 불만을 호소했다. 물론 윤기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런 투정을 부티는 입술에 윤기는 갑작스레 입을 맞추었다. 쉴 세 없이 움직이던 지민의 입술이 윤기에 의해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멈추었다. 이 형이 진짜.
“뭐예요, 갑자기.”
“뭐 어때 우리 둘 밖에 없는데.”
윤기의 매혹적인 말이 지민을 홀렸다. 그래도 여기 팀장실인데.. 지민이 뭐라 꿍얼거리자 윤기는 그런 지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괜찮아, 이 한마디를 하고는 그대로 지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쳤다. 두 혀가 야릇한 소리를 내며 꿀이 음식에 발리듯 서로 뒤엉켰다. 한 번 씩 이러는 것도 나름 스릴 있는 거일수도. 지민이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윤기의 한 손은 지민의 뒤통수를 지탱하고 다른 한 손은 지민의 정장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고 있었다.
“아, 잠깐..!”
윤기가 지민의 성감대인 허리를 쓸자 지민이 몸을 부르르 떨며 윤기의 손 위로 지민의 손이 겹쳐졌다. 이윽고 윤기가 지민의 귀에 대고 괜찮아, 하며 속삭이자 지민이 힘을 조고 있던 자신의 손에 힘을 풀었다. 예전부터 윤기는 지민과 관계를 가질 때 괜찮아, 라는 말을 하며 지민을 타이르곤 했다. 그 결과는 아주 효과적. 윤기의 손이 지민의 벨트를 풀고 속옷을 벗겨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차가운 윤기의 손이 지민의 것에 닿자 지민은 몸을 떨며 자지러지늠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하읏, 형..!”
지민의 것을 움켜잡고 위 아래로 흔들었다. 윤기의 손동작이 빨라지자 지민의 신음소리는 나날이 거칠어졌다. 점점 지민의 허리가 꿈틀거리고 마침내 지민의 것이 윤기의 손에 울컥 하고 정액을 토해냈다.
“아, 형 진짜..”
“귀여운데, 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자그마한 두 손으로 가리고 어쩔 줄 모르는 지민에 윤기가 지민의 손을 치우고 입에 입맞춤을 했다. 방금 전 지민의 것이 토해 낸 정액을 지민의 뒤에 바르고는 손가락을 집어넣자, 지민이 조금 고통스러운 듯 무거운 신음소리를 해소했다. 점점 손가락의 개수를 늘려가며 지민의 뒤를 거의 다 풀었을 때 쯤, 3개 까지 들어간 윤기의 손가락을 뺐다. 하으, 갑자기 빠져나간 손가락에 허전한지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는 지민에 윤기가 피식 하고는 실소를 흘렸다.
“힘 빼고.”
윤기의 것이 지민의 구멍에 맞춰지고 서서히 넣기 시작했다. 아흑, 형, 살살, 천천히이.. 말꼬리를 늘려가며 윤기의 팔을 꼬옥 붙잡았다. 말꼬리 늘리는 게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지민은 알까. 지민의 뒤에 넣었던 윤기가 점점 피스톤 질을 하며 스피드를 높여갔다.
“아, 형..!”
“형 말고, 하, 다른, 거.”
윤기의 말에 지민이 입 밖으로 다른 호칭을 내뱉었다.
“팀장, 아, 팀장니임..!”
“지민씨, 내가 말꼬리 흐리지 말랬는데,?”
자꾸 그러면 벌을 받아야지. 이 말을 끝으로 윤기의 허릿짓이 더욱 빨라졌다. 그런 윤기의 반응에 지민은 윤기의 밑에서 신음 소리를 흘리느라 침도 못 삼키고 삼키지 못한 침이 지민의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윤기의 피스톤 질이 빨라지자 따라서 정신없이 흔들리는 지민의 다리를 윤기가 잡아서 자신의 허리에 감게 만들었다. 점점 둘의 관계는 절정으로 닿았고, 지민의 것은 애액을 분출하여 사정없이 온 곳에 튀고 있었다.
“팀, 팀장님..! 저, 갈 것 같,..!”
지민의 말을 끝으로 윤기가 지민의 안에 사정하는 동시에 지민도 윤기의 배에 사정했다. 윤기가 자신의 것을 지민의 안에서 빼지 않고 지민의 위로 철푸덕 하고 쓰러졌다. 방안에는 거칠게 몰아쉬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아, 집에 가서 하자니까요..”
“가는 동안 내가 어떻게 참아.”
지민의 투정을 받아치는 윤기에 지민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서는 몰라요, 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했다. 지민의 허리를 붙잡는 윤기의 손만 아니었어도. 지민이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윤기를 바라보자, 윤기는 뭘 묻느냐는 식으로 지민을 바라보고는 입을 뗐다.
“한 판 더 해야지.”
여기서 하는 것도 처음인데. 윤기가 지민의 허리를 붙들고 다시 위치를 맞추었다. 그 날 밤, 윤기의 팀장실 안에서는 두 남자의 신음소리가 쉴 세 없이 들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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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길을 잃다
W. 윤 슬
내가 달리는 그 길 끝에는 항상 네가 서 있었다. 마치 고생 끝에 너를 만난 걸 알 듯이, 아주 환한 미소로. 그러나 지금, 네가 내 곁을 떠난 지금, 내가 달려가는 그 길 끝에는 네가 없었다. 네가 없는 곳에서 나는 너를 찾기라도 하는 듯 방황하고, 두리번거렸다. 나를 항상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너, 그런 네가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요즘 어때?]
너와 헤어지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옆에 네가 없는데 시간은 애석하게도 계속 달리고 있다. 나는 네가 없는 이곳에서 더 이상 길의 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이 방황의 끝에는 네가 있을까. 친구의 안부문자에 나는 더 네 생각이 났다. 왜 이럴까 내가. 네가 있을 때는 네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던 내가. 너 한 사람 없다고 예전의 내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너의 앞에서는 안 나오던 웃음이 나던 나였는데 너 하나 없다고 입가에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온다면 내 웃음도 되찾을 수 있을까.
“왜이러냐, 민윤기.”
답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며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소리가 아닌, 그냥 씁쓸한 웃음소리가. 밤낮이 구별되지 않게 방에 쳐놓은 암막 커튼. 커튼을 살짝 들추어보니 낮인 듯 빛이 새어나왔다. 새어 나온 빛으로 방을 둘러보고는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너 없다고 내가 이러고 사는 구나. 몇 병을 마신 건지 거실에 널브러져져 있는 소주, 맥주 등의 온갖 술병들. 한 달 동안 너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이러고 살았다는 게 너무 바보 같았다. 넌 나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시시콜콜한 궁금증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런 순간까지도 네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한심해 보이는 나의 모습에 절로 한 숨이
“윤기 형, 사랑해요.”
소파에서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고개를 돌렸다. 환청인 건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네가 없었다. 이왕 환청도 들렸는데 네 모습까지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내 옆에서 나의 안부를 물어볼 것 같은데 너는 내 옆에 없고 어디 있는지. 시도 때도 없는 너의 생각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나왔다. 나 울고 있는데, 어서 내 눈물 닦아줘야지, 다시 드는 너의 생각에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런 내가 역겨우면서도 너의 모습이 내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손 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손을 뻗자 닿는 것은 너의 따스한 온기가 아닌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나 정말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걸까.
“삐리리리리리-”
한동안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울렸다. 배터리 나간 줄 알았는데. 발신자를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벌써 동창회 할 때가 다 됐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받지 않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낮게 깔리는 나의 목소리에 괜히 내가 흠칫했다.
“우리 오늘 동창회 하는 거 알지? 너 맨날 빠졌잖냐, 그만 궁상떨고 한 번이라도 얼굴 비추러 나와.”
지금도 연락하는 유일한 동창 두 명 중 하나, 김남준. 한 달 전 지민이와 내가 헤어진걸 아는 유일한 사람 이기도하다. 궁상떨고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난 네가 내 곁을 떠난 뒤로 어떻게 살아간 걸까.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니 헬쑥해 보이는 얼굴에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내일 갈까, 동창회. 시간을 보니 약 5시간 정도 남은 상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다시 침대로 향했다. 시간이 남으면 네 생각을 할 게 뻔하니까 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에. 온갖 생각이 난무하며 나는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을 보니 저녁 5시. 동창회가 6시라 지금 쯤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켰다. 최근 들어 제일 말끔한 모습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약속장소에 들어가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김남준의 모습에 눈인사를 하고는 남준의 옆에 착석했다. 사람이 많아 그런지 느껴지는 시끄러운 분위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역시, 괜히 왔나. 그런 생각이 들며 나는 앞에 있는 맥주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무엇보다 오기 싫은 이유는 고등학교에서 나눈 지민이와의 추억 때문일까.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솟구쳐 오르는 너의 생각에 다시 속이 거북해졌다.
“아, 그 얘기 들었냐? 박지민 걔 요번에 새로 애인 생겼다던데.”
듣고 싶지 않은 너의 소식이 또 동창들의 목소리에 저절로 귀가 열어졌다. 나 보다 잘생겼을까, 키는 클까, 아님 혹은 여자랑 사귀는 걸까.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너라는 아니 하나 때문에.
“야, 야, 뭐 그런 얘기를 하고 그러냐?”
옆에서 나의 눈치를 보며 입을 털던 그 새끼들을 향해 자제를 시키는 남준의 모습에 저절로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쟤는 내가 얼마나 한심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숨 막히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 나는 안주도 없이 술을 계속 들이켰다. 뭔 놈의 술이 오늘따라 달게 느껴지는지. 옆에서 남준이가 말림에도 나는 끝도 없이 계속 술을 들이켰다. 너와의 추억을 잊기라도 하듯이. 잔뜩 술에 취한 나는 옆에서 2차를 가자고 하는 동창들의 말에 됐다고 거절을 하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택시도 잡지 않은 체, 그저 비틀거리는 이 두 다리로만. 그냥 오늘따라 끝도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윤기 형!”
신호등 건너편에 손을 흔들고 있는 너. 이게 너를 그리워하는 나에 대한 환상인지, 진짜 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너를 쫓았다. 천천히 한 발, 두 발. 너에게 닫기 2미터 전, 너를 안기 2미터 전에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너의 모습 때문에.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횡단보도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떨궜다.
“빠아아앙-”
그 때, 내 옆에서 울리는 요란한 클락센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빨간불’ 그제 서야 드는 생각. 너의 환상 때문에 내 목숨이 위험해 졌구나.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트럭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지막 한 마디를 중얼 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 해 오는 트럭에 치였다. 내가 쓰고 있던 모자가 공중에서 휘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마지막 까지도 너로 인해 내 삶이 끝나는 구나. 그리고 나는 영원히 깰 수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극 길 끝에 네가 있길. 그렇게 빌었는데 내가 달려 온 그 길 끝 어디에도 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 네가 없는 곳에서. 사랑했다. 아니, 지금 이 순간마저도 너를 사랑한다. 나 없이도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안녕, 내 길의 끝, 내 삶의 이유,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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